우산도(于山島)·자산도(子山島)·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 


현재의 독도(獨島)는 예로부터 우산도(于山島)·자산도(子山島)·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 등으로 불려왔으며, 일본에서는 송도(松島)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명칭인 [독도](獨島)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10년) 울릉군수 심흥택(沈興澤)의 [울릉군수보고서]에서 [本郡所屬獨島]라는 기록과 한말 지사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서였다. 그 이전에는 주로 [우산도](于山島)나 [삼봉도](三峰島)로 불렸다.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울릉도편 권58]과 [세종실록지리지 권153]에 독도와 울릉도를 [于山·武陵]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독도와 울릉도를 [于山鬱陵]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숙종실록 권30]에 동해 어민 안용복이 울릉도에 들어가 자칭 송도(松島)에 산다는 倭人을 보고, [松島는 子山島로서 또한 우리 나라의 땅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자산도](子山島)는 우산도(于山島)의 誤記인 듯 [증보문헌비고]에는 [우산도](芋山島)로 기록되어 있어 지금의 독도임에 틀림이 없다. 

[삼봉도](三峰島)라는 명칭은 [성종실록]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독도 동남방에 촛대와 같이 뾰족하게 솟은 바위섬이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세 봉(峰)으로 성립된 것 같아서, 成宗朝에 이 섬을 삼봉도(三峰島)라 한 것 같다. 

[가지도](可支島)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나며, 주변에 물개과에 속하는 바다 짐승인 可支魚(강치)가 서식하는 데에서 유래하여 1791년(정조18)경에 사용된 것 같다. 

오늘날 사용되는 [독도](獨島)라는 명칭의 유래는 이 섬이 동해 한복판에 외로이 있기 때문에 독도(獨島)라 하였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 섬 자체가 바위, 즉 돌로 성립되어 있고, 경상도 방언에 돌을 독이라 하므로 [돌섬]이라는 뜻에서 [독도]라고 불렀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과는 다르게 世界海圖上에는, 1849년(헌종15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쿨]호가 독도를 보고 붙인 [리앙쿨]암(Liancourt Rock)이라는 명칭과, 1855년(철종6년) 영국함선 [호네트]호가 붙인 [호네트]암(Hornet), 그리고 日本名인 죽도(竹島; Dakeshima)로 표기되고 있다.

참조 : http://tokdo.kordi.re.kr/

 

가. 우산도(于山島)

세종실록(1417년)지리지(地理志) 울진현조(蔚珍縣條)에 의한 기록에 의하면 ‘우산(于山)과 무릉(武陵)이 현 바로 동쪽바다 가운데......’ 여기에서 우산은 독도를 무릉은 울릉도를 가리킨다. 우산은 문헌에 따라 여러 표기【자산(子山), 간산(干山), 천산(千山)】가 있으나 우산의 잘못된 표기로 보여진다. 

우산과 무릉의 위치나 거리에 관한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후자의 주(注)가운데 ‘일설에 의하면 우산과 울릉은 본시 같은 섬이다 ’라는 기록이 있어 일본측에서는 일도설(一島說;우산과 울릉을 두 개의 섬이 아니라, 하나의 섬이다)에 따라 일본이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즉 울릉도와 우산도가 합하여 우산국을 형성했으나, 우산국이 멸망하자 자연 우산도라는 도명(島名)으로 바뀌어 울릉도가 우산도라고 병칭되다가 우산도라는 명칭은 따로 분리되어 주로 독도를 지칭하게 된 것으로 보아야된다고 한다. 

나. 삼봉도(三峰島)

조선 초기 우산도 외에 삼봉도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종때 많은 동해안 어민들이 세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하여 도망간 곳인데, 당시 영안도(함경도)관찰사 이극명이 파견한 김자주등이 경성 옹구미포를 출발하여 서쪽으로 떨어진 삼봉도에 겁이 나서 상륙하지 못하고 그림만 그려왔는데 그 그림이 현재의 독도와 같다고 한다. 

다. 가지도(可支島)

정종실록(1794년) 무오조(戊午條)에 독도를 가지도라 부른 이유가 독도에 해려(강치)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당시 해려를 가제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이것을 한자로 하여 가지(可支)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라. 독도(獨島)

처음 공식 사용된 것은 광무 10년(1906년) 음력 3월 5일자 울릉도 군수 심홍택의 보고서에서 심홍택은 당시 일본 오키섬 도사 동문포 일행이 이 섬을 일본에 편입하였다는 사실을 통고하여 왔다는 보고서 가운데 ‘본군소속 독도’(本郡所屬獨島)라고 하였다.

내용출처 : http://contents.edu-i.org/gongmo/2001/ds22eqo/d-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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